국제유가가 사우디 공급 차질 우려로 WTI 99달러, 브렌트 113달러까지 뛰었다. 유가는 운송비·포장재·원료라는 세 경로를 거쳐 시차를 두고 품목마다 다른 강도로 장바구니에 닿는다. 경유값과 두바이유·환율의 방향을 몇 주 단위로 지켜보며 수입 원료 가공식품과 장거리 신선식품부터 오름세를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10월 2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2월 인도분은 배럴당 99.47달러로 2.39% 올랐다. 같은 날 브렌트유는 113.17달러까지 4% 뛰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공격으로 중동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유가가 오르면 장바구니도 따라 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전부 오르지는 않는다. 유가는 몇 단계를 거쳐, 시차를 두고, 품목마다 다른 강도로 식탁에 닿는다. 어느 품목이 먼저 오르는지, 무엇을 보고 가늠할지 알아두면 지출 계획이 한결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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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운송비다. 화물차와 택배 차량, 고속버스는 거의 전부 경유로 움직인다. 유가가 오르면 경유값이 따라 오르고, 산지에서 매장까지 물건을 나르는 비용이 바로 커진다.
둘째는 포장재와 공장 에너지다. 플라스틱 용기, 비닐, 페트병 같은 포장재는 원유에서 뽑아낸 석유화학 제품이다. 식품을 데우고 끓이고 냉동하는 공장 설비도 에너지를 쓴다. 유가가 이 비용을 함께 끌어올린다.
셋째는 원료 자체다. 유가가 오르면 바이오연료와 사료 수요를 통해 곡물·유지류 국제 가격이 자극받는다. 밀가루, 식용유, 설탕처럼 수입 원료에 기댄 품목이 여기에 민감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월에 내놓은 분석을 보면 체감폭을 가늠할 수 있다. 두바이유가 10%포인트 오를 때 국내 석유류 가격은 2.00%포인트 올랐다. 다만 이번처럼 공급 차질 같은 운송 불확실성이 원인이면 상승폭이 2.69%포인트로 더 커졌다.
소비자물가 전체로는 통상적인 유가 상승이 0.11%포인트, 운송 불확실성이 원인이면 0.20%포인트를 끌어올렸다. 평소라면 거의 움직이지 않던 근원물가도 운송 차질발 유가 급등에는 0.10%포인트가량 반응했다. 근원물가는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기조적 물가라, 여기까지 움직였다는 건 충격이 일시적 유류비를 넘어 가공식품 등으로 번졌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KDI는 배럴당 105달러 수준이 이어지면 소비자물가 기여도가 올해 1.6%포인트에서 내년 1.8%포인트로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즉 지금의 유가 충격은 올해보다 내년 장바구니에 더 길게 남을 수 있다. 실제로 2022~2023년 가공식품 가격 급등도 당시 유가·곡물값 상승에 몇 달 뒤처져 나타났다.
영향이 큰 쪽은 두 부류다. 하나는 수입 원료와 공장 에너지 비중이 높은 가공식품이다. 식용유, 밀가루, 과자, 라면처럼 기름·곡물과 포장에 많이 기대는 제품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운송 거리가 길고 신선도가 중요한 농수산물이다. 먼 산지나 수입에 의존할수록 경유값 상승분이 그대로 얹힌다.
반대로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품목도 있다. 국내 근거리에서 공급되고 가공이 적은 제철 채소, 원료비보다 인건비 비중이 큰 품목은 유가에 덜 흔들린다. 다만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은 한 번 오르면 유가가 내려도 잘 내려오지 않는 하방경직성이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유가가 오른다고 모든 품목을 한꺼번에 사재기할 이유는 없다. 수입 원료가 많은 가공식품과 장거리 신선식품부터 오름세를 확인하고, 경유값과 두바이유·환율의 방향이 몇 주 이상 같은 쪽을 가리킬 때 지출 계획을 조정하는 편이 현실적이다.